2008/05/12 19:43

가해자에 대한 감정 다스리기 아바타 코스

아랫 글과 마찬가지로 아바타 미니코스에 있는 글입니다.

번역은 직접 했습니다.

Mastering Your Feelings About Your Abuser
가해자에 대한 감정 다스리기


Who are you really to the person who injured you? What do you think was going on in their mind? Are they not subject to the same conditions of old age, disease, loss, and death that afflict all creatures? Maybe you still harbor enough resentment toward them to find this a comforting thought, but the sobering reality is that you are in the same situation. You may think you know the cause of your suffering, but at very most, you know only a few links in the chain.
당신을 상처입힌 사람에게 당신은 정말로 어떤 사람인가요? 그들 맘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모든 생물들처럼 그들도 늙어가고, 병들고, 무언가를 잃고, 죽지 않나요? 당신은 여전히 그들에 대한 원한을 많이 품고 있어서 이런 생각이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냉정한 현실은 당신도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겁니다. 당신은 당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의 원인이 뭔지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기껏해야 그 인과 사슬의 몇몇 단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Beneath the anger and resentment directed toward your abuser is an unbearable sadness. Their actions have reminded you of all the negative actions in the world, including your own. They have brought suffering to your door. They have opened a crack of awareness on your own guilt. How do you close it off? By blaming them for your feelings. Blaming is a refusal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 fact that all humans inflict suffering, either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Blaming is an excuse for not examining your own failures (column 4 on your Burdens of Life Worksheet). Blaming grows from guilt. The hardest forgiveness to grant anyone is the forgiveness you secretly need to grant yourself.
당신이 가해자에 대해 분노할 때, 그 아래에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 때문에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행위를 되새기게 됐습니다. 당신 자신이 행한 것을 포함해서 말이죠. 그것들은 괴로움을 당신의 문에 가져왔습니다. 당신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문을 금가게 했습니다. 어떻게 이 금간 부분을 다시 닫아버릴 수 있을까요? 이런 느낌을 받는 게 다 그들 탓이라고 비난하면 됩니다. 비난한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을요. 비난한다는 것은 당신 자신의 실수를 조사하지 않는 걸 용서하는 것입니다. 비난은 죄의식에서 자라납니다. 용서하기 가장 어려울 때는 그 용서를 스스로에게 비밀스럽게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입니다.


Unawareness is the price we pay for pointing our finger in blame. This is the same unawareness that permits the insensitivity of our abusers. If they knew the suffering they were causing and the consequence of evil being drawn to evil, they would reform immediately and beg for forgiveness. But they don’t know, and they protect themselves from this knowledge with unawareness—as do we.
우리는 누군가를 비난하며 손가락질 할 때 깨닫지 않음을 대가로 지불합니다. 가해자들의 무신경함도 바로 그 깨닫지 않음 때문에 가능합니다. 만약 자신들이 불러일으킨 괴로움을, 그리고 악으로 이끌어가는 이 악한 결과를 스스로 알았다면, 그들은 즉각 스스로를 교정하고 용서를 구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그들은 모름을 통해서 스스로를 이런 앎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처럼요.


What hurts us the most, after our own suffering of pain and loss is done, is the awareness of how deep and wide is the suffering of the world. Blaming is an expression of helplessness; it is an effort to focus on one event so the great sorrow afflicting all living things remains hidden. Not to see this great sorrow is the payoff for playing the victim/victimizer game. Too much awareness is a fear that both we and our victimizers share.
아프고, 또 무언가를 잃는 개인 수준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뒤에는, 우리는 온세상의 괴로움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깨달으면서 무엇보다도 속상해합니다. 비난하는 건 무력하다는 걸 표현하는 겁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괴롭히는 거대한 슬픔을 계속 숨겨두기 위해 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하는 겁니다. 희생자-가해자 게임을 통해 이 거대한 슬픔을 외면할 수 있죠. 우리와 가해자 양쪽 다 너무 많이 깨닫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요.


Is it not hypocrisy to honor the Buddha for bringing us the word lesson (an intellectual gift), life is suffering? Or to honor God for teaching us lessons through suffering? And then blame the idiot, perpetrator, abuser, betrayer, or victimizer who brings us the same gift as a world lesson (experiential)? Who is the better teacher? Should we bow to one and punish the other? Is it possible to conceive that all things are working out for the best? Is it possible to conceive that there is really nothing to condemn or forgive? Ever?
부처님께서 "삶은 괴로움이다"라는 지적인 가르침으로 전해 주신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건 위선 아닙니까?  혹은 시험에 들게 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하느님께 경의를 표하는 건요? 그리고나선 같은 가르침을 생생한 체험으로 우리에게 선물한 가해자를 비난하는 건요? 누가 더 나은 스승이죠? 우린 한쪽에 경배하고 다른쪽을 처벌해야 합니까? 모든 것이 결국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비난하거나 용서할 건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단 한번이라도?


Mastering your feeling about your abuser is about compassion. This does not mean that you will not take strategic actions to protect yourself or others in the future, but it does mean that you will not take angry or vengeful actions for events in the past. You give up all desire to harm him, or her, or them, for whatever reason. You interrupt the flow of suffering by accepting that an unwelcome change may have occurred to you, but you will accept and suffer it for the sake of the world and not inflict it on another.
가해자에 대한 당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건 자비심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전략적 행동을 취하길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과거 사건에 대한 분노나 복수심에 찬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당신은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을 해하려는 모든 욕구를 포기합니다. 달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을지라도 세계를 위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괴로워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 괴로움을 전파하지 않음으로써, 당신은 괴로움이 퍼져나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Let vengeance go; let life-source handle it. You are not responsible for another’s accountability. You forfeit the right of vengeance in favor of self-forgiveness, in favor of freedom from guilt, and in favor of the joy of reconstructing a satisfying, worthwhile life.
복수를 포기합시다. 삶의 근원이 그것을 다루게 하세요. 타인의 책임은 당신 몫이 아닙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용서하기 위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족스럽고 보람찬 삶을 재건하는 즐거움을 위해 복수할 권리를 포기합니다.


It is a good deal!
왕창 남는 장사죠.


덧글

  • Frey 2008/05/13 11:24 # 답글

    좋은 글이네요. 매일 한 번쯤은 읽을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 ez-1 2008/05/13 18:48 # 답글

    둥글게 둥글게~
  • 성큼이 2008/05/13 23:27 # 답글

    Frey // 한조각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z1 //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큼지막한 원이라면 좋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