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1 03:53

강남 사람들도 그저 사람일 뿐 성큼칼럼

강남이 왜 욕을 먹느냐고? 구한말 사대부들을 보라 <-- 은하 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저는 서울 서초구에서 24년째 살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강남에서 자라난 사람들하고는 생활 양식이 꽤 차이가 있습니다만, 계속 강남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왔고,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는 약간은 압니다.

강남이 처음부터 부자들이 몰려 살던 곳은 아닙니다. 허허 벌판에 세운 뉴타운이죠. 제가 처음 이곳에 이사올 무렵만 해도 제가 졸업한 중학교 자리에는 논농사를 짓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자수 성가한 사람들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집안 대대로 큰 부자인 사람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옮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고, 애초에 한국 전체의 부자 숫자 자체도 작았습니다.

어느샌가 땅값이 계속 오르고 강남 일대는 점차 최고급 주거 지역의 위상을 얻어갑니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굳어지는 시점은 역설적이게도 강남을 가장 견제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입니다. 강남의 성장을 억누르고 국토를 균형개발하겠다는 의도였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가 강남을 최고급 주거 지역으로 인증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서울 강남이 이렇게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았죠. 균형 개발 계획 때문에 전국 여러 지역의 땅값이 들끓었고, 돈을 쥐게 된 지방 사람들이 정부에 의해 인정받은 최고급 주거 지역인 강남으로 오려고 했고, 강남 집값은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강남에 집 있던 사람들은 저절로 큰 부자가 됐습니다.

이와 동시에 강남은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사방이 적입니다. 정부에서는 집에 세금을 마구 마구 올려서 그거 낼 능력 안 되면 20년씩 살던 곳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정치권에선 툭하면 "우리는 국민 99%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 1%로 몰린 강남 사람들을 공공연히 적으로 돌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사람들이 스스로 지배층이라고 생각할까요? 제가 알기로는 많은 강남 사람들이 스스로를 피해자, 사회의 소수자, 희생자로 여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걸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회가 이들에게 해 준거라곤 사실 집값 올려준 거 말고는 별 거 없습니다. 그리고 집값이 오른 건 집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때에나 진짜 돈을 쥐게 되는 거지 그게 아니면 그냥 허상에 지나지 않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부모님 근처에 집 구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은 꿈이 상당히 멀어져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기는 집단은 단결을 잘 합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이전 시절의 호남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은하님의 글에서는 강남이 권력을 쥐었다는 걸 나타내는 증거로 대선, 총선, 교육감 선거, 종부세 완화, 강남 소비문화 등을 들었군요. 소비문화는 그냥 소비문화일 뿐 거기서 권력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종부세는 부동산 가격 급등을 막으려고 과도하게 올려놓은 면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선거의 승리는 전 정부의 실착과 더불어 강남의 단결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강남 사람들의 재력이 그 근원인 건 아니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사랑이 오가는 세상이라면 강남 사람들도 그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1%를 희생해 99%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올바르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비교적 잘 살았던 유태인들을 학살한 히틀러와 동급의 생각이죠.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sungkm.com/tb/3847556 [도움말]

덧글

  • amish 2008/08/01 05:17 # 답글

    지방에서 고딩까지 마치고. 방배동 와서. 15년째 개기고 있는 사람 입장으로는. ..

    강남은 기득권에 속하긴 합니다... .. 물론. 성큼님 말씀도 옳은 부분은 많지만..

    강남으로 불리는 지역의 인프라는 장난 아니거든요.-_- ..

    뭐 이외에도 여러부분이 있긴 하지만..

    '강남에서 타 지역에도 설마 있겠지 라고 생각한 부분이 상당히 혹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동네'가 꽤 많습니다...
  • 성큼이 2008/08/01 09:38 #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군생활하던 동두천을 생각하면 ^^;

    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기준과는 별개로 강남 사람들의 주관적인 피해 의식이 문제죠. 군생활 아무리 쉬운데서 해도 본인은 힘든 거랑 비슷하달까요 ^^;
  • bzImage 2008/08/01 10:55 # 답글

    맞습니다.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이 Divide and Conqurer 로 숫자도 많고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 표현하는 사람들을 배척한다는게 웃기는 일이죠.
  • 성큼이 2008/08/01 23:23 #

    네, 국민들 다수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으니 거기에 비비는 거죠. 그냥 정치가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생각한다면 좀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지지해주는 게 저희가 할 일이겠지요.
  • 장준혁 2008/08/01 15:02 # 삭제 답글

    "이런 상황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걸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회가 이들에게 해 준거라곤 사실 집값 올려준 거 말고는 별 거 없습니다."
    서민의 입장에서 볼때는 이것보다 더 좋은 혜택이 뭐냐고 묻고싶습니다.
    집값오르다 = 불노수익이 늘어났다는거 아닙니까?
    한평생 벌어도 1억을 모을까말까한 비정규직입장에서 그저 배에에 기름낀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네요.
  • 성큼이 2008/08/01 23:39 #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집값이 올라서 그걸로 실제 돈을 벌려면 집을 팔고 집값이 더 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합니다. 오랫동안 정들이며 살던 곳에서 떠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고,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저 세금만 엄청 오른 꼴이죠.

    다행히 그 세금을 낼 능력이 되는 사람이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결국 오랫동안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꼴이죠. 엄청 큰 공돈 생기는데 배에 기름낀 소리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게 쫓겨나는 사람의 입장에 처하시면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걸러지면서 강남은 더더욱 부자들만 남아 있는 진짜 부자 동네가 되어 갑니다. 저도 돈 벌고 장가가서 독립해 부모님 근처에 집 얻어서 살고 싶은데 현재는 전혀 그럴 능력이 못 됩니다. 그리 기분좋은 상황은 아니죠.
  • 흑염패아르 2008/08/01 20:20 # 답글

    웅... 어렵다 - _ㅠ;
  • 성큼이 2008/08/01 23:42 #

    보통 우리 시야는 항상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혹은 싫어하는 마음으로 왜곡되어서 있는 그대로 못 보니까 어렵지. 계속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봐. 갈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곤 해 ^^;
  • 은하 2008/08/02 00:32 # 답글

    와 일단 트랙백 감사드려요:) 그리고 반갑습니다^^. 저도 어릴적 10년은 서초동에서 (세 들어서!) 살았었거든요. 서울이라면 흔히 드는 인상과 달리 동네에 비닐하우스가 있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거 다 지금 아파트 되었을라나요.

    하지만 강남사람들의 피해의식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는 있어도, 이것이 정책적인 측면으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2차대전 이후 일본의 피해의식을 보는 기분과 비슷해요. 일본역시 원폭으로 '객관적으로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그것이 아시아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강남이 다른 지역을 침략한 적은 없지만(웃음)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강남사람들이 피해의식을 주장할 때 드는 기분은 이와 비슷한 거 같아요.

    그래서 1%를 희생하고 99%를 살리면 안 되는 것이 맞지만 그것이 강남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집값 1~2억이 왔다갔다 할 때, 강남 주민들과 집없이 발을 동동구르는 신혼부부들 중 누구의 타격이 더 클 것이며, 불공장한 것인지는 뻔히 답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차라리 그 말은 강남,수도권, 도시 중심의 발전에 희생된 농촌을 예로 들 때 더욱 적절한 말인 거 같아요.

    그러나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사랑이 오가는 세상이라면 강남 사람들도 그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 방법이란 결국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나 교육문제에 있어서 강남지역의 아이들도 입시지옥에 벗어나 행복한 학교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음 교육감선거는 이런 문제가 이슈가 되었음 좋겠네요.


    에그그 너무 길어져서 죄송해요 ㅜㅜ
  • 성큼이 2008/08/03 01:35 #

    하하 죄송할 거야 있나요 ^^;

    사실 강남 사람의 피해 의식이든, 다른 지역 사람들의 피해 의식이든 간에 피해 의식 자체는 그저 거대한 착각일 뿐이죠. 착각 속에 빠져들어 있을 때에는 그 착각이 너무나도 진실 같지만 사실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걸 깨달으려면 서로 사랑으로 감싸주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와는 별개로 실제 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사회 전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건 사실 굉장히 복잡한 문제죠. 단순한 시각에선 당연해 보이는 일이 실제 생각했던 정반대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도 그 예인데 단순하게 잘 사는 사람에게서 뺏어서 못 사는 사람에게 분배한다는 방식은 보통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고소득층이 세금을 피해 해외로 빠져 나간다든가 혹은 소비를 줄인다든가 하면 곧바로 저소득층에 타격이 가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격차를 줄인다'는 개념보다는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과 내일에 대한 기대야말로 활기차게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요?
  • 쇼코라 2008/08/04 15:13 # 답글

    트랙백타고 왔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격차를 줄인다'가 진보의 개념이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가 보수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후자쪽에 찬성이지만, 전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다면 이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은.)

    여담이지만 얼마전에 교육평준화 관련 글에 '필요한건 학력경쟁을 없애는게 아니라 학력 외에 경쟁할 수 있는 분야의 선택권을 늘리는 것'이라는 글은 남기려다 문장력 부족으로 그만뒀던지라 두분의 덧글이 왠지 굉장히 와 닿네요.
  • 성큼이 2008/08/04 19:44 #

    반갑습니다 ^^ 후자가 철저히 이뤄지면 전자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쫙 열려 있고 누구나 그 길로 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잘 알려져 있다면 더 이상 사회적 격차나 박탈감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자기가 못한 게 아니고 그저 안 한 것 뿐이니까요. 그거 할 시간에 다른 더 좋은 걸 한 거니까 아무 불만도 없을 테고 모두가 즐거울 수 있겠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 서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나가는 게 그 길에 도달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Quency 2008/08/08 08:13 # 답글

    결론의 강조하신 부분에 왕공감합니다. '모두'를 지향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만약 그렇다면 그 '모두' 라는 집단은 '어느 누구도' 배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링크해가욤.
  • 성큼이 2008/08/08 16:06 #

    맞습니다. 나 vs 남, 혹은 우리편 vs 적 의 구분은 환상일 뿐이거든요. 모두가 잘 되도록 가는 게 중요하죠.
댓글 입력 영역